타임지 선정 '올해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윤여정'이라 쓰고 '진짜 배우'라 읽는다

영화배우 윤여정. 사진=타임지 홈페이지
영화배우 윤여정. 사진=타임지 홈페이지

과연 윤여정이다. 2021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영화배우 윤여정이 이름을 올렸다. 올해 초, 영화 ‘미나리’로 전 세계 영화계를 뒤흔든 윤여정답다. 75년 공들여 쌓아 온 그의 인생이 쉴 새 없이 빛을 발하고 있다.

■ 타임지 선정 ‘올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16일(한국시간)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이 올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TIME 100 Most Influential People 2021)을 발표했다. 타임은 매년 영향력 있는 100인을 선정하고 있다.

이날 발표된 명단에는 배우 윤여정과 함께 영화 ‘미나리’에 출연한 한국계 배우 스티븐 연도 포함됐다.

할리우드 배우 케이트 윈슬렛, 팝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 빌리 아일리스, 프로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 미국 체조선수 시몬 바일스, 영국 해리 왕자, 애플 최고경영자 팀 쿡,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도 이름을 올렸다.

타임 100인 추천사를 통해 스티브 연은 윤여정에 대한 존경을 표했다.

그는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는 그녀의 존재에 매료됐다. 나는 그녀만큼 자신감 있는 사람들을 만나 본 적이 거의 없다. 그것은 깊은 자신감에서 우러난 자신감이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영화 ‘미나리’를 통해 오스카상을 받은 그녀의 연기뿐만 아니라, 세계가 그녀를 더 잘 알게 돼 행복하다”라고 전했다.

윤여정은 이번 타임 선정에 “늘 하던 일을 했을 뿐인데 과분한 칭찬을 받은 한 해였다”라며 “‘타임’이 선정한 올해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뽑혔다는 소식에 저 자신도 놀라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바라건대 긍정적인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었기를 바라며, 저보다 훨씬 훌륭한 분들과 같이 ‘타임’의 영향력 있는 100인 안에 제 이름을 올리게 돼서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윤여정의 55년+20년 인생

올해 세계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휩쓴 윤여정에게 많은 사람들이 축하와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일찌감치 윤여정의 진가를 안 이들은 ‘세계가 뒤늦게 알아봤다’라고 평한다. 단순히 영화 ‘미나리’ 때문이 아니다. 여태껏 그가 쌓아온 연기 커리어와 단단하게 일궈온 삶의 모습이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윤여정의 연기 인생의 시작은 5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여느 배우들과는 조금 다른 독특한 이력을 지닌다.

윤여정은 배우를 시작한 계기를 두고 ‘동기가 불순하다’고 설명한다. 그는 명문고를 졸업한 데 반해 원하지 않은 대학을 입학하게 됐고, 자존심이 상해 학교도 가기 싫었다고 한다. ‘뭔가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던 중 탤런트라는 새로운 직업이 생겨난 때라 공채 탤런트 시험을 응시했고, 합격하면서 배우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는 게 그의 연기 입문기다.

TBC 공채 3기 신인 탤런트로 데뷔한 그는 1969년 MBC로 자리를 옮긴다. 이후 1971년 드라마 ‘장희빈’에서 장희빈 역할을 맡으며 큰 인기를 얻게 된다.

같은 해 김기영 감독 영화 ‘화녀’에 출연하면서 ‘윤여정’이라는 이름 석 자를 대중 쐐기에 박는다. 당시 대종상 신인상과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거머쥐기도 했다.

화려하게 데뷔한 윤여정은 결혼과 이혼을 거치며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때 연기와 멀어져 지내며 생활고를 겪는 등 인생의 큰 어려움을 치렀다.

아들 둘을 떠안고 가장이 되어 돌아온 윤여정의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당시 시대 분위기는 이혼한 여성에 대한 편견이 짙었고, 복귀도 녹록지 않았다.

하지만 윤여정은 작은 역할도 마다하지 않고 본인의 역할을 해냈다.

1987년 김수현 작가가 집필한 MBC 드라마 ‘사랑과 야망’으로 다시 대중 앞에 나선 그는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사랑밖엔 난 몰라’, ‘내가 사는 이유’, ‘거짓말’ 등 굵직한 작품을 통해 재기에 성공했다.

■ 윤여정이라 쓰고 진짜 배우라 읽는다

윤여정이 출연한 국내외 장?단편 드라마는 총 102편에 달한다. 영화는 30편이다. 다작한 비결에 대해 그는 자신이 생계형 배우라고 답한다.

많은 동료 배우들이 윤여정을 ‘진짜 배우’라고 말하는 데에는 무수히 많은 작품에 출연한 것 외에 다른 이유가 있다. 그는 매 작품마다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며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다. 다양한 시도와 모험을 서슴지 않는 것도 특징적이다.

윤여정의 필모그래피는 화려하다. 1995년 개봉한 박철수 감독 영화 ‘어미’에서는 딸을 인신매매로 끌고 간 범인을 직접 처단하는 엄마 역할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고,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에서는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엄마로 파격 변신했다.

2010년 개봉한 리메이크판 ‘하녀’에선 농익은 연기로 평단의 찬사를 이끌어냈다. 당시 춘사영화상, 부일영화상, 대종상 등 대한민국 각종 영화제에서 10관왕을 달성하며 여우조연상을 싹쓸이했다.

윤여정은 나이가 들며 작품성보다 사람을 보고 작품을 선택한다고 스스로 말한다.

이재용 감독 영화 ‘죽여주는 여자’와 김초희 감독의 ‘찬실이는 복도 많지’,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에 출연한 것도 모두 소신에 맡긴 결정이었다. 돈보다 중요한 가치를 알고, 새로운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그의 열정과 철학이 바로 대중이 윤여정에게 열광하는 이유다.

■ 젊은 세대, 70대 여배우 윤여정에 ‘윤며들다’

‘여우조연상 41관왕’, ‘한국인 최초 오스카 연기상 수상’ 윤여정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들이다. 한국 영화 역사를 새로 썼다는 평도 나온다.

수상의 영광보다 더 뜨거운 건 대중의 반응이다. 평소 인터뷰를 하지 않기로 유명한 윤여정은 올해 수많은 기자회견과 인터뷰를 했고 그 안에서 화제를 낳았다.

특히 연기만큼 당당하고 솔직한 발언들에 ‘윤며들었다(윤여정 매력에 스며들었다)’는 젊은 층이 크게 늘었다. 유쾌하면서도 진솔한 그의 입담과 한 분야에서 꾸준히 제 갈 길을 가는 굳건한 모습이 자극제가 된 모양이다.

또 70대라는 나이가 무색한 트렌디한 모습과 권위적이지 않은 태도도 호감을 샀다.

그 인기를 반영하듯 윤여정은 젊은 20~30대 여성이 주 고객층인 여성 패션 쇼핑 앱 광고모델에 발탁되는가 하면 젊은 남녀 배우들의 전유물과도 같은 주류 광고도 섭렵했다.

■ 70대 윤여정, 인생 2막에 응원을

지난 4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영화제 시상식 장에서 윤여정은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뒤 인상 깊은 소감을 남겼다. 그의 연기 인생 50여년의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윤여정은 당시 “사랑하는 두 아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저를 일하게 만든 아이들이다. 사랑하는 아들들아, 이게 엄마가 열심히 일한 결과란다”라고 말했다. 시상식에 참석한 관객들은 웃음 지었지만, 이게 윤여정이 배우로 지난 시간을 감내해온 진짜 이유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윤여정. 이제는 아들 둘이 아닌 오롯이 자신을 위한 삶을 사는, 당당한 배우이자, 70대 그녀의 삶에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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