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 지도위원의 발언문

발언하고 있는 김진숙 위원. 사진뉴스클레임DB
발언하고 있는 김진숙 위원. 사진뉴스클레임DB

문신부님 앞에 죄송스럽습니다. 어제가 환갑이었는데 산전수전 공중전에 항암전까지 겪으며 한 200년쯤 산 거 같은데 아직 60년밖에 안 살았나 싶다가도 환갑이라서 징그럽기도 하고 그랬는데 감옥에서의 생일도 크레인에서의 생일도 특별했지만 회사 정문밖에서 여러분들의 축하를 받으며 맞는 생일도 각별했습니다. 환갑도 훨신 전에 간경화로 돌아가신 엄마 생각도 많이 났습니다.

18살부터 공장생활을 하면서 온종일 욕을 먹고 퍔을 맞고 머리를 쥐어박히는 게 일상이었던 보세공장 시다부터 신문배달, 우유배달, 시내버스 안내양, 그러나 산업역군의 꿈을 안고 잔업 좀 하면 30만원도 넘는다는 조선소의 용접공이 되었습니다.

화장실이 없어 어둔 구석을 찾아 현장을 뱅뱅 돌고, 식당이 없어 쥐똥이 섞인 도시락을 먹으며, 떨어져죽고 깔려죽고 끼어죽고 타죽는 동료들의 시신을 보며 그 사고보고서에 '본인 부주의'라고 지장을 찍어주고, 내가 철판에 깔려 두 다리가 부러졌을 때도 '본인 부주의'에 누군가 또 지장을 찍어주며 산재처리를 피하던 현장.

일이 너무 힘들고, 스물 다섯 살 짜리가 사는게 아무 희망이 없어 죽으려고 올라갔던 지리산. 천왕봉에서 본 일출이 너무 아름다워 1년간 더 살아보자고 내려와 노동조합을 알게 됐고, 화장실이 없고 식당이 없으면 요구하고 싸워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유인물 몇 장에 불순불자 빨갱이가 되어 해고된 세월이 35년. 박창수도, 김주익도, 곽재규도, 최강서도 살아서 온전히 돌아가고 싶었던 곳, 현장으로 돌아갈 마지막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항암을 하면서 하루종일 토하며 서지도 못하고 눕지도 못할 때 이 힘든 걸 뭐하러 하나 싶다가도, 이대로 죽으면 저승에 가서도 자리를 못 찾아 헤맬 것 같기도 하고, 희망버스 타고 와서 눈물로 손을 흔들어주고 가시던 그 간절한 손짓들이 눈에 밟혀 버뎠습니다.

10년 전 희망버스 손수건입니다. 손수건은 다 해지고 낡을만큼 세월이 흘려 그 때 세 살이던 성민이는 6학년이 되고 초등학생이던 은서는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진조합원들은 다시 고용의 위기 앞에 서 있습니다.

얼마 전 조합원 한마당에서 만난 조합원에게 불안하지 않냐고 물었습니다. "정리해고 투쟁을 몇 번이나 겪었는데 인자 만성이 돼서 개안심니다. 큰 싸움을 몇 번이나 했는데 또 못하겠심니까. 또 바짝 싸우면 되지요." 이런 조합원들이 있어 전 걱정하지 않습니다.

새벽마다 목이 쉬도록 출근선전전을 하는 지회장과 간부들. 그리고 2011년 울고 웃으며 끝까지 함께했던 희망버스 동지들, 또 한 번 기적을 만들어내고 우리 손으로 승리의 역사를 써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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