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분해성 플라스틱의 한계를 넘는 우리들의 책임있는 자세

사진=박명규 기자
사진=박명규 기자

코로나19와 생활 문화의 변화, 또 사회적 인식의 개선으로 인해 플라스틱 폐기물에 대한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요즘이다.

플라스틱 폐기물은 자연적으로 분해가 거의 되지 않아 그 양이 줄지 않기 때문에 골치가 아픈 폐기물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과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는데 그 중 하나로 ‘생분해성 플라스틱(Bio-degradable Plastic)’이 있다. 이름 그대로 미생물이나 균류 등 생물에 의해 쉽게 분해될 수 있는 플라스틱이란 뜻으로, 분해성 플라스틱들 중에서도 가장 주목을 받는 종류다.

편하게 사용할 수 있으면서도 뒷처리 걱정(폐기물)을 하지 않아도 되니, 그야말로 꿈과 같은 물질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기존의 플라스틱 처럼 사용하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다.

설명에 앞서,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왜 플라스틱을 쓰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먼저 플라스틱이 대량으로 발생되는 배달음식 주문 상황을 생각해보자.

주문하는 음식 메뉴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보편적인 한국의 식문화를 생각해보면 용기에 담기는 내용물의 물리화학적 특성이 해외의 것에 비해 가혹한 편이다.

뜨겁거나(고온), 짜거나(고염도), 새콤하거나(산성), 물이 많거나(내수성要), 기름지거나(내유성要) 한다. 덤으로 사용 중에 용기에 가해지는 충격을 버텨낼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물리화학적 스트레스를 잘 견뎌내면서, 환경호르몬이나 중금속 같이 용기의 성분이 용출되어 인체에 독성 반응을 일으키는 일이 없이 생물-화학적으로도 안전한 물질이어야 비로소 우리가 용기로 사용할 수 있다.

또한 플라스틱 사용에 있어 빼먹을 수 없는 제품으로 ‘화장품’이 있다.

화장품 용기에 사용될 수 있는 물질은 앞서 말한 요구 사양들에 더불어, 심미적 욕구 마저도 충족시킬 수 있어야한다. 다양한 질감 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형태를 효율적으로 구현해 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들이 안전하고 건강하며, 편리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정말 다양한 ‘자격 조건’들을 충족시켜야만 한다.

플라스틱은 이런 조건들을 훌륭하게 소화해낼 뿐만 아니라 저렴하기까지 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플라스틱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석유계 플라스틱들 중에서도 이런 요구사양을 충족시키지 못해서 사용하기 어려운 플라스틱들이 있다.(대표적으로 재활용이 어렵고 소각시에 다이옥신이 배출되는 PVC가 있다.)

따라서 생분해성 플라스틱이 기존 플라스틱에 대한 의미있는 대체제가 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자격조건’을 가져야 함과 동시에 그 조건을 역행해야하는 아이러니를 극복해야한다.

분해가 잘 된다는 것은 플라스틱을 구성하고 있는 단량체가 잘 끊어져야한다는 뜻이고 이는 결과적으로 내구성이 약해지게 된다. 분해성 플라스틱들이 기존 플라스틱보다 잘 깨지거나 찢어지고, 조각이 나기 쉬운 이유는 이 때문이다.

생분해가 너무 잘 일어나면 심지어 사용 중에 분해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친환경이라고 해서 제공되는 종이 빨대를 쓰다보면 커피를 채 다 마시지도 않았는데 빨대가 젖어버려 사용이 곤란하게 되는 상황과 유사하다.

또한 생분해성 플라스틱이 이름 처럼 생분해가 되기 위해서는 분해를 위한 조건이 필요한데 때문에 폐기할 때에는 기존의 플라스틱과는 별도로 처리가 되어야 한다(예를들어 Lactic Acid를 단량체로 하는 PLA 플라스틱). 문제는 이를 위한 처리시설이 국내에는 미흡한 실정인데다 처리시설을 본격화 하기에는 그 양이 너무 적다. 그렇다고 일반 매립지에 매립할 경우 분해되는데 백 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어중간하게 분해되는 경우, 크기만 작아진 플라스틱이 되어버리면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미세플라스틱’의 주범이 될 수도 있다.

기존 플라스틱에 혼합될 경우엔 재활용 효율을 떨어뜨려서 사용을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가공이나 성형에도 제약이 많아 심미성을 충족하는데도 어려움이 많다.

비록 그 적용분야를 조금씩 넓혀가고 있다곤 하나, 생분해성 플라스틱이 가진 이런 한계들 때문에 그 기술적인 놀라움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만약 이러한 단점들을 모두 극복한 생분해성 플라스틱이 나온다면 이른바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 전 세계 유수의 화학 회사들이 앞 다퉈 대안적인 플라스틱 개발에 투자하고 연구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제품의 가격이 조금 높아진다 한들, 폐기물 문제나 환경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지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플라스틱을 사용해야하는 기업 입장에서도 보다 나은 ESG 경영을 실천할 수 있으니 환영이다. 다만 아직은 때가 이를 뿐이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현대 과학 기술의 한계다.

배부르게 마음껏 먹고 싶지만 살은 찌고 싶지 않은 현대인들의 모순된 욕심처럼, 사용하기는 편하게 사용하면서 쉽게 버릴 수 있고 또 그 부산물로 인한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하는 욕심을 이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그 기술이 보편화 되기 전 까지만이라도 우리는 기존의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한다. 우리의 편의를 위해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만큼, 그 편의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한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일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줄여보고, 플라스틱을 사용해야 한다면 잘 세척하고, 분리하여 알맞게 배출해야한다. 이제는 이런 행동이 자연스러운 습관으로 안착되어야 한다.

과거, 공장이나 기업, 정부 같이, 몇 개의 큰 단위들만 두들기면 어떻게든 개선될 수 있었던 20세기의 환경 문제와는 달리, 21세기의 환경 문제는 개인들의 노력과 참여가 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플라스틱을 거부하거나 그 사용을 죄악시 여기기 까지 하면서 마치 과거로 회귀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될 수도 없거니와 더 큰 사회적 낭비와 부작용을 불러올 뿐이다.

플라스틱에는 죄가 없다. 우리가 편하고 윤택한 삶을 누리기 위해 개발된 수많은 물질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 이를 사용하는 것도 죄가 될 순 없다. 다만 우리에겐 ‘책임감 있는 자세’가 필요할 뿐이다. 그런 책임감 없이는 어떠한 기술적 대안도 백약이 무효하다. 결국 기술은 사람이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편리함을 누린 만큼 버릴 때 만이라도 조금 더 신경을 써서 버린다면, 지구 환경도 지킬 수 있고 우리의 돈도 지킬 수 있다.

※ 외부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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