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2021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코로나 시대에 대한 진단 어디에서도 거론되지 않는, 아침밥/ 설거지/ 학교 온라인 수업/ 점심밥/ 설거지/ 학원 온라인 수업/ 저녁밥/ 설거지로 하루가 가도 어쨌든 지나왔다.”

초등학교 고학년 딸을 둔 나리는 향초, 비누 등을 만드는 공방을 운영한다. 코로나로 딸이 학교에 갈 수 없게 되자 가정용 CCTV를 설치하고, 상황이 여의치 않은 학부모들 대신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방탈출 카페로 인솔하기도 한다. 여기까지 본다면 이 소설이 코로나가 불러온 ‘돌봄 공백’에 관해 이야기하는 듯 보이지만 이들이 겪는 공백이 코로나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드러냄으로써 소설은 독특한 위치에 놓인다.

나리의 공방은 중년 여성이 주고객이다. 이들은 공방에서 아이에 관한 많은 것을 공유한다. 아이 교육과 돌봄에 관해, 개학 연기에 관해 말할 때 남편 혹은 아빠의 존재는 언급하지 않는다. 여기서 등장하는 익숙지 않은 단어는 ‘학모’다. ‘학생의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뜻으로 ‘학부모’로 부르던 것에서 ‘부’가 탈락한 것이다. 학모들은 아이 양육자이자 유일한 책임자로서 “어디서 뭘 해도 쉽게 비난을 들”어 왔다. 공방에 모여 향초를 만드는 동안에도 이들은 공방이 확산의 진원지가 된다면 “우린 아마 총살을 당할” 것이라며 자조한다.

“그 봄에 나는 불특정 다수의 방문을 원했고 불특정 다수 모두를 의심했다. 그들과 접촉했다.”

공방에는 여자친구 선물을 만들러 남자들이 짝지어 온다. 몇 번이고 방문한 그들을 나리는 그저 수강생으로 대하지만 이들이 다정한 연인처럼 보이고, 이태원 클럽발 집단감염이 확산하는 동안 이들을 향한 화자의 시선이 변화한다. 이들이 만진 자투리 비누가 젖을 때까지 에탄올을 뿌리고, 같은 시각 ‘맘카페’는 ‘너네들이 클럽에서 처놀지만 않았어도’ 성토하는 글로 폭발한다.

아이들은 오후가 되면 로데오 거리를 헤맨다. ‘딸들’은 새로운 공포에 시달린다. ‘N번방 사건’으로 “N개의 비명”이 퍼진다. 나리는 딸에게 “니 얼굴을 찍지 마. 어디에도 너를 올리지 마” 몇 번이고 말하고 싶어진다.

“욕하지 말고 친근히 대해주세요.”

소설 속 서울에 비가 유난히 자주 내린다. 이 설정은 2020년 봄을 떠올리게 해 소설 속 혐오와 학대가 거짓도 과장도 없는 현실임을 강조한다. 나리의 공방에 방문하는 학모, 성소수자, 아이들은 코로나로 물론 고통받았지만, 이들이 겪은 혐오는 얼마나 오랜 것일까. 재난지원금, 클럽발 집단감염 등 지난해 봄을 빠르고 적실하게 담은 최신 소설임이 분명하지만 이 혐오는 낯설지도 새롭지도 않다. 코로나는 “살짝만 당겨도 죽는 집단과 제대로 당겨도 죽지 않는 집단”의 차이를 극대화한 장치로서만 기능했다. 혐오는 언제나 있었다.

“욕하지 말고 친근히 대해주세요.” 나리의 딸, 열세 살 여자아이가 비디오 커뮤니티에 자신을 소개하는 문구로 이렇게 썼다. 취약한 존재를 취약하게 만드는 것은 누구일까. 타깃을 조준할 힘은 모두에게 있다.

저작권자 © 뉴스클레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