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냘 이야기2'
SBS'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냘 이야기2'

방송가에 스토리텔링 프로그램이 범람한다.

각각 역사와 도서를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낸 tvN ‘벌거벗은 세계사’, ‘요즘책방 : 책 읽어드립니다’는 재미와 더불어 시청자가 관심 가지기 어려운 분야에 시선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호평받았다. 이 두 프로그램은 스토리텔링 형식 교양예능의 가능성을 발굴했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기획이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인기리에 방영 중인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 역시 현시점 대표적인 스토리텔링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 제목의 ‘그날’은 주로 역사적으로 주목할 만하거나 사회적으로 공분을 산 사건이 발생한 날로 출연자들은 둘씩 마주 앉아 ‘그날’에 관해 이야기한다. ‘오대양 집단 변사 사건’, ‘평택 영아 납치 사건’ 등 발생 당시 이미 주목받은 적 있는 사건을 다룸에도 이 프로그램이 신선하다는 평을 얻는 이유는 사건을 ‘재조직’하는 방식에 있다. 출연자들은 친한 친구에게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를 전하듯 “그날은 비가 엄청 오는 날이었어.” 같은 일상적인 말투로 대화의 물꼬를 튼다. 은밀한 표정으로 대화가 진행되고 생각하지 못한 반전이 거듭할수록 맞은편의 출연자는 물론 시청자까지 빠르게 이야기에 집중한다. ‘흥미롭기’ 때문이다.

‘꼬꼬무’나 ‘알쓸범잡’을 비롯한 범죄 스토리텔링 프로그램이 불편하게 여겨지는 이유 역시 이 지점이다. 범죄 사건을 ‘흥미롭게’ 재조직하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의미한 성과란 존재하는가.

‘꼬꼬무’는 대개 비극적인 사건을 다룬다. 프로그램은 시청자가 감정적으로 동요하고 고조되기를 의도한 듯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출연자는 감정의 정점에서 눈물을 흘린다. 결론은 대부분 ‘이 사건은 다시는 반복하지 말아야 할 참사’라거나 ‘이 사건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식이다. 여기에는 동의한다. 또한 방송사가 방송을 ‘흥미롭게’ 만드는 것 역시 도의적, 경제적 측면에서 본다면 이해할 수 있다. 이 사건을 기억하게 함으로써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든, 이윤을 내기 위해서든 방송사 입장에서는 시청자를 늘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때 놓쳐선 안 될 것이 ‘흥미’이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검색되는 사건인 ‘한강 실종 대학생 사건’을 보도하는 방식 역시 이 관점에서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언론사는 사건이 진척되지 않았음에도 관련한 모든 사항을 보도함으로써 ‘조회수 장사’를 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이 보도 형식이 도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마땅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잊히지 말아야 하고, 이 사건은 높은 조회수를 보장함으로써 수익을 내니까, 언론사 입장에서는 보도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언론의 보도가 비판을 받는 것은 이것이 ‘흥미 위주’의 보도로 비치기 때문이다. 타인의 죽음이 ‘화젯거리’ 혹은 ‘흥미로운 사건’인가.

여기서 주목할 점은 대중의 역할이다. 언론과 대중은 길항 관계다. 언론의 보도 방식은 대중의 인식에 영향을 미쳐 여론을 형성하지만 그 반대의 영향력도 존재한다. 대중, 즉 소비자가 소비하는 콘텐츠를 언론은 발행한다. 소비자의 선택에는 편향이 작용할 가능성이 높으며, 편향 중 ‘흥미’로 향하는 편향은 강력하다. ‘한강 대학생 실종 사건’에 사흘 앞서 평택항에서 산재 사고로 청년 노동자가 사망했다. 두 사건이 검색된 횟수를 분석해보면 ‘흥미 편향’이 얼마나 강력한지 확인할 수 있다.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어키워드로 비교한 결과 한강 대학생 사건이 100번 검색될 동안 평택항 청년 노동자의 죽음은 2번 검색됐다. 전자에는 있고 후자에는 없는 것은 무엇일까. 두 죽음 사이 어떤 차이가 이 결과를 만든 것일까.

범죄 혹은 사망 사건을 흥미 위주로 조직하는 프로그램은 실제 사건 역시 흥미 위주로 파악하도록 편향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콘텐츠 발행자인 언론은 흥미 위주로 보도하지 않도록 자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동시에 소비자인 대중에게는 스스로 사건을 파악하고 있는지 말 그대로 소비하고 있는지 점검할 책임이 있다.

‘벌거벗은 세계사’가 인기를 얻던 때, 출연자가 역사 왜곡 논란에 휘말리며 하차했다. 그는 자신의 유튜브 계정에 사과 영상을 게시하며 “자신이 부족했”으며 “제작진의 잘못은 없다”고 했지만 이를 개인의 잘못으로 볼 수는 없다. 방송을 ‘재미있게’ 만들고자 풍문을 섞어 강연한 것이 강사 개인의 일탈일 수 있을까. 재미있는 이야기만이 팔리는 세상이라면 거짓말하지 않을 자신이 정말 모두에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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