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운동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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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는 참사로 표현된다. 많은 이가 고통스럽게 사망하거나 아직 자가 호흡이 흠든 상태로 의료용 기구에 숨쉬기를 의지해야 해서다.

당연히 피해를 준 가해 기업들과 연구자들이 사과하고 책임을 져야하지만 현실은 무죄를 선고 받는 일이 많다.

대법원은 29일 제품 흡입 독성 실험결과를 조작해 증거 위조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조명행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에 대해 사기죄를 뺀 증거위조와 수뢰 후 부정처사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제 더 이상 죄를 묻지 못하게 됐다.

환경 단체는 사법부의 이 같은 판결에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진상을 조작하고 은폐하려는 가해기업들이 건넨 뒷돈을 받고 연구자의 양심을 판 '청부과학자'에 면죄부를 주고 말았다"고 원통해했다.

이어 "탐욕으로 뭉쳐진 이들의 동맹에 최소한의 법적 책임조차 묻지 못하는 사법부를 규탄한다"고 덧붙였다.

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조명행 교수는 옥시(Reckitt)가 서울대 산학협력단과 맺은 '가습기살균제의 안전성평가' 연구책임자였다. 조 교수는 2011년 10월 옥시가 서울대에 지급한 실험 연구용역비 2억5000만원과 별도로 자문료 명목의 1200만원을 개인 계좌로 받아 챙긴 뒤, 옥시에 불리한 연구데이터를 일부러 조작하거나 누락한 최종결과보고서를 써줬다.

이는 신현우 대표 등 옥시 임직원들의 형사사건 증거를 위조한 혐의로 이어진다. 실제 옥시(Reckitt)는 질병관리본부가 2011년 8월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 미상 폐 질환의 위험 요인으로 추정된다'는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하자 이에 대응하려 조 교수에게 해당 실험과 보고서를 맡겼다. 그리고 옥시(Reckitt)는 문제의 보고서를 받아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로 인한 업무상 과실치사상 사건을 수사 중이던 경찰에 제출하면서 옥시(Reckitt) 임직원들의 형사사건에서 가습기살균제와 폐 손상 사이의 관련성을 부정하는 근거 자료로 썼다.

2016년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해당 최종결과보고서는 옥시 쪽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이용됨으로써 수사·사법권의 적정한 작용에 대한 위험을 초래했을 뿐 아니라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 원인을 파악하는 데 장애요소 중 하나가 돼 진상규명이 지연됐다"며 조 교수의 혐의를 모두 인정해 징역 2년과 벌금 2500만원에 추징금 1200만원을 선고했다.

이를 뒤집은 2017년 항소심 재판부의 무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2018년 말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가 "서울고등법원 판결(항소심) 타당성에 의문이 간다"며 조 교수가 해당 연구자료를 조작하고 연구데이터를 축소·왜곡했다는 결정을 내렸다.

2019년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도 대법원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연구자가 기업으로부터 금전을 지급받고 기업의 요청에 따라 기업에 불리한 실험 데이터를 의도적으로 누락한 행위는 연구부정 행위"로 규정한 바 있다.

2017년 항소심 재판부의 무죄 선고를 이어받은 대법원조차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자문료가 연구와 관련된 직무 행위 대가로서의 성질을 가진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조 교수에 대한 증거위조와 수뢰후부정처사 혐의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환경운동연합은 "항소심에 이은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그 자체로 탐욕으로 가득찬 기업들과 윤리의식을 내던진 연구자들이 연구 조작·왜곡을 통해 이익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것이나 다름 없다"며 "무엇보다 탐욕으로 똘똘 뭉쳐진 동맹의 결과가 소비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그 실체적 진실까지 숨기고 가릴 수 있다는 점에서 사법부의 무책임한 판결에 분노한다"고 성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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