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통상 전문가 출신 사외이사 美정치권에 SK측 입장 옹호...'대주주 및 경영진 견제·감시' 역할 부합하나 비판제기

김종훈 SK이노베이션 의장
김종훈 SK이노베이션 의장

김종훈 SK이노베이션 이사회 의장이 직접 미국을 방문해 LG에너지솔루션과의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 대한 국제무역위원회(ITC) 판결 거부권 행사를 촉구한 가운데 적절성 논란이 일고 있다.

김 의장은 SK이노베이션에서 독립성을 가져야 하는 사외이사와 감사위원회 의원을 맡고 있는데, 마치 일반 경영진처럼 회사 관련 사안을 위해 직접 뛰어든 모양새여서다.

31일 외신 등에 따르면 김 의장은 최근 미국을 방문해 정치권에 미국 대통령 직속 ITC(국제무역위원회) 판결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조지아주(州) 투자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김 의장은 ITC 판결에 대해서도 "정당한 절차나 공정한 기회를 보장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며서 민사 소송이 진행 중인 델라웨어 지방법원에서 시비를 가리겠다고 했다.

앞서 ITC가 지난달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는 결정을 내려 LG측 손을 들어주고, 배터리와 관련 제품의 10년 수입금지를 명령하자 대응에 나선 것이다.

ITC 결정에 대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끌어내기 위해서다. ITC 최종판결은 대통령이 효력 발생 여부를 확정하는데 거부권 시한은 오는 4월 11일이다.

김 의장은 한-미 FTA협상 수석대표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본부장, 제19대 국회의원(정무위원회·산업통상자원위원회)을 맡아 관련 분야에 높은 전문성이 있는 인사다.

2017년 사외이사로 선임됐는데 2019년 SK이노베이션 사상 최초로 사외이사 가운데 이사회 의장으로 선출됐다.

실제 SK이노베이션도 김 의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면서 "외교·통상 분야의 전문가로서 풍부한 경험과 탁월한 전문성 및 글로벌 네트워크 등을 바탕으로 회사의 글로벌 성장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힌 바 있다.

SK이노베이션 이사회에는 김 의장 외에 김준 대표이사 사장, 유정준 기타비상무이사(SK E&S 부회장)외에 하윤경 홍익대 공과대 교수, 김정관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김준 경방 대표, 최우석 고려대 경영대 교수 등이 사외이사로 있다.

이사회 내 감사위원회는 이달 11일 ITC에서 열린 소송 결과를 강하게 질타하고, 유사 상황 재발을 막기 위한 보완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번 김 의장의 방문에 대해서도 SK이노베이션 측은 "최근 이사회 결과를 토대로 김 의장이 직접 현장 리스크를 점검하고, 이해 관계자들과 만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미국에 방문한 것으로 안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김 의장이 미국 현지에서 보인 행보는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회 위원의 본래 취지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사외이사는 엄연히 경영진(사내이사)과는 역할이 다르다는 것이다. 사외이사 제도는 대주주의 독단적인 경영을 사전에 차단하고 견제, 감시하기 위해 독립성을 갖춘 인사를 외부에서 이사회 구성원으로 추천하는 장치다.

SK이노베이션도 "감사위원은 전원 사외이사후보추천위에서 추천 받은 사외이사로 구성해 독립성을 강화하고 있다"며 "사외이사는 상법 등 관련 법령상 자격 기준을 준수함은 물론, 전문성, 성실성, 독립성, 사회적 지명도 등의 선정 기준에 따라 주주총회에서 선임되고 있다"고 기준을 밝히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경영진의 경영 활동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거나 경영진의 직무 집행이 적법한지에 대해 객관적으로 감시하는 것이 사외이사이자 감사위원회 위원의 본연의 역할"이라며 "김 의장이 이를 넘어 직접 현지 정치권 인사들을 만나며 대관 업무를 대신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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