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15일 별세, 민주사회화 운동의 별이 지다

"이봐, 문재인이?! 여기 백기완 할아버지가 왔어. 얼른 나와서 백기완 할아버지의 말을 들어. 이 불쌍한 노동자들 원대복직 시켜야 되지 않겠어? 이봐 문재인이?! 이 백기완 할아버지 밀 안 들을 테야? 이봐 문재인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만들어야할 거 아냐?!"

87세 할아버지의 목소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청와대 분수대 앞 집회장소에서 대통령 문재인을 꾸짖듯 달래고 타이르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한국 진보운동의 큰 어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다.

백 소장은 늘 노동자와 민중 곁에 있었다. 그를 필요하는 투쟁장에는 늘 함께 했던 재야운동가다.

투쟁장에 백 소장이 모습을 보이면 너나할 것없이 와서 안부를 묻고 힘을 보태주는 것에 대해 큰 힘을 얻는다.

백기완. 이름석자만으로도 노동자의 억울한 투쟁장에는 활기가 돈다.

진보운동가는 그렇게 노동자들과 늘 함께하고 그들에게 희망과 힘을 북돋아주는 존재였다.

그런 백기완 소장도 지병과 세월엔 장사가 없었다.

15일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89세.

서울대병원 등에 따르면 백 소장은 이날 오전 입원 중 영면했다. 그는 지난해 1월 폐렴 증상으로 입원해 투병생활을 해왔다.

백기완 소장의 고향은 황해도다. 그는 1932년에 태어나 1950년대부터 한국 사회운동 전반에 참여했다. 생전까지 한국 민주화 역사의 산 증인이기도 했다.

유명한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원작자이기도 하다.

그의 파란만장한 사회운동의 역사는 1964년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참가로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그러다 1974년 유신 반대를 위한 1백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해 긴급조치 위반으로 투옥된다.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과 1986년 `부천 권인숙양 성고문 폭로 대회'를 주도한 혐의로도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최근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했지만, 지병으로 인해 끝내 별세했다.

15일 오늘도 전국에는 크고 작은 집회가 열린다. 백기완 소장의 별세 소식에 현장은 아쉬움과 슬픔으로 가득찼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19일 오전 7시다.

<뉴스클레임>은 백기완 소장이 생전에 늘 노동자와 함께 투쟁했던 가장 최근의 모습을 촬영해 소장하고 있던 영상을 재차공개한다.

영원한 민주투사 백기완 소장의 영면을 빈다.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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